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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3. 23世 〉54. <부정공>휴삼배유인성산이씨행장기(休三配孺人星山李氏行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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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부정공>동식배유인전주이씨전(東植配孺人全州李氏傳)
(부정공후)23世동식(東植)配 유인전주이씨전(孺人全州李氏傳) 孺人李氏籍全州孝寧大君諱補后起淵女高宗己酉生賦性純至事父母極孝定省之節織経之方一遵姆敎父母每惜其不爲男子子及笄敏于玉川趙氏忠獻公諱元吉后光鉉之子宗勲之室上有王姑老且病坐卧湏人且家無擔石菽水難絶孺人移孝于夫家克恭克恭克勤居處飲食及衣服等便身之物無不備置必問其뷑欲而進在視寒暖必適其宜者凡九年美及其遭故哭泣之哀奠饋之儀莫不中禮隣近族戚當時目覩者至今相對贊誦不己自是以耒舅姑安其養妯娌樂其義融融和氣溢于户庭美不幸天不佑善夫宗勲事而徃順天市爲自動車뷑觸入于病院孺人聞其報秉夜馳彺百方求治而竟至不諱返喪本家而敬引之際孺人長聲一痛昏倒氣絶家人男女驚惶罔措移八寝室舅姑飲泣慰諭日汝若如是則我失子之人頼誰而活勝下失父之幼孤依誰而育惟當回心易慮保我門戶非汝之責耶孺人幡然改悟送終之禮情文俱至反慰舅姑而終不以慼嗟色見于舅姑之前晝而耘夜而縫織寒燈凄房喫苦千生萬受克全家拜如其孝也如其烈也 論曰夫人能行士君子之行則古人稱之以女士求之令世如李孺人者非歟世人以夫死從殉爲烈而不問其處地之當否惑之甚也若舅姑在堂老無依振而自遂其志則似缺於孝養之道夫家興督惟繫於幼孤而不顧其後乃自心則非曰不烈奈亡夫之絶祀何孺人則以耒壬人自居而孝養舅姑成立幼孤卒保亡夫之後九原他日吿于亡夫之前者亦將有辞鳴乎休哉 歲在 仲夏工澣 玉川 趙敏植 撰 (부정공후)23世동식(東植)配 유인전주이씨전(孺人全州李氏傳) 유인 이 씨의 본관은 전주시니 효령대군 휘 補의 후손 起字 淵字의 딸이시니 고종 기유년에 출생하시어 성품이 순결하시고 부모를 섬기는 데 극진한 효도로 혼정의 절차와 길쌈과 바느질의 법을 한결같이 유모의 가르침을 따르시니 부모님께서는 항상 사내로 태어나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기었다. 그 후 혼기가 되어 옥천 조 씨 충헌공 휘 元 字 吉 字의 후손 光 字 鉉 字의 아들 宗勲과 결혼하였는데 위로 시할머님께서 늙고 병들어 일으키고 눕히기를 몸소 다 맡으시고 또 집이 가난하여 끼니가 어려운 고로 부인께서 효도를 다하여 공손과 근면을 지표로 하여 거처와 음식이며 의복 등을 모두 다 갖추었고 반드시 그 하시고 싶은 바를 시부모님께 여쭈어 올리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그 지체에 맞게 하시기를 어언 구 년 만에 시할머님의 상사를 당하여 상례의 범절이며 제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를 따르니 인근 일가와 친척이 당시 눈으로 본 사람은 지금도 서로 만나 칭송 아니 한 사람이 없다. 이처럼 살아오니 시부모와 그 동서끼리도 오손도손 우애하고 그 올바른 일에 마음 편하시니 융융한 화기가 온 가정에 넘쳐흘렀습니다. 그때 불행히도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남편 종훈께서 무슨 일로 순천 시내에 가다가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부인께서 그 소식을 듣고 밤길에 달려가 백방으로 치료를 강구하였으나 마침내 운명하여 시신을 본가로 옮겨 발인할 즈음 부인께서 방성통곡 하다가 갑자기 기절하니 집안사람 남녀 할 것 없이 경황하여 침실에 옮겨 눕히고 시부모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위로의 말씀으로 달래며 말씀하시기를 네 만일 이렇게 한다면 나는 아들을 잃은 사람이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며 슬하에 아비 잃은 어린 자식들은 뉘를 의지하여 자랄까. 오직 마땅히 마음을 돌리고 생각을 바꾸어 우리 가문을 보존할 일은 너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하시니 부인께서 번연히 그 말씀을 옳게 깨닫고 장례 절차를 경건히 마치고 도리어 시부모님을 위로하며 찌푸리고 언짢은 얼굴빛을 보이지 않고 낮에는 김매고 밤에는 길쌈과 바느질로 처량한 등불 싸늘한 방에 맵고 쓴 한 많은 고생 끝에 가정을 복원하였으니 그야말로 효도가 아니고 무엇이며 그 열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남편이 죽음으로써 따라 죽음이 열녀로 생각하는데 그 처지의 정당함을 생각지 아니하니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늙은 시부모께서 의지할 곳 없어도 자기의 뜻만 이룬다면 효양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까요 남편의 집안 흥망은 오직 어린 자식에 달려 있는 것을 깨닫고 죽지 않는 것을 열녀 아니라고 말한다면 어찌 죽은 남편의 제사 끊김을 어찌하리요. 부인은 미망인으로서 스스로 살아가며 효도로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자식들을 성립시키며 마침내 죽은 남편의 뒤를 보존한다면 뒷날 저승에 가서 죽은 남편 앞에 떳떳하게 말하리니 또 그 이상 무슨 말을 할까요. 슬프다, 이만 기록하는 바입니다. 乙巳年 五月 상순 옥천 조민식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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